오직 은혜
시편 51편 1–13절 · 다윗의 고백
본문 말씀
1하나님이여 주의 인자를 따라 내게 은혜를 베푸시며 주의 많은 긍휼을 따라 내 죄악을 지워주소서
2나의 죄악을 말갛게 씻으시며 나의 죄를 깨끗이 제하소서
3무릇 나는 내 죄과를 아오니 내 죄가 항상 내 앞에 있나이다
4내가 주께만 범죄하여 주의 목전에 악을 행하였사오니 주께서 말씀하실 때에 의로우시다 하고 주께서 심판하실 때에 순전하시다 하리이다
5내가 죄악 중에서 출생하였음이여 어머니가 죄 중에서 나를 잉태하였나이다
6보소서 주께서는 중심이 진실함을 원하시오니 내게 지혜를 은밀히 가르치시리이다
7우슬초로 나를 정결하게 하소서 내가 정하리이다 나의 죄를 씻어 주소서 내가 눈보다 희리이다
13그리하면 내가 범죄자에게 주의 도를 가르치리니 죄인들이 주께 돌아오리이다
배경
다윗이 이 시를 쓴 때
이 시편은 다윗이 밧세바와 통간한 후, 선지자 나단이 찾아와 "당신의 죄가 크다"고 선포했을 때 지은 시입니다. 성경학자들은 다윗이 무려 일주일 동안 울며 금식하며 기도했던 그 자리에서 이 고백이 터져 나왔다고 봅니다.
오늘 우리는 이 다윗의 고백을, 죄에 집중하는 눈이 아니라 그 반대편에 있는 하나님의 인자(恩慈)를 바라보는 눈으로 함께 살펴보고자 합니다.
1–2절
"내 죄악을 지워주소서" — 기록 말소의 간구
여기서 "지워주소서"는 단순한 용서가 아니라 기록 말소(記錄 抹消)의 의미입니다. 연필로 적은 노트를 지워도 눌린 자국이 남듯, 다윗은 그 흔적조차 남지 않도록 완전히 없애달라고 간절히 부탁하고 있습니다.
"주의 인자와 주의 많은 긍휼 때문에 — 내 죄의 크기 때문이 아니라 — 이것을 없애달라고 고백하고 있습니다."
그 간구의 근거가 어디에 있는지를 주목해야 합니다. 다윗이 이 간청을 드리는 이유는 "내 죄가 너무 커서"가 아닙니다. 오직 하나님의 인자와 은혜 때문입니다. 죄의 크기가 아니라 하나님의 성품에 기댄 고백입니다.
핵심
죄와 사탄의 목적은 우리가 하나님께 나아갈 힘을 잃게 하는 것입니다. 반드시 기억해야 할 것이 바로 이것입니다.
3–4절
"내 죄가 항상 내 앞에 있나이다" — 알짱거리는 죄
3절에서 다윗은 "내 죄가 항상 내 앞에 있다"고 고백합니다. 이 "항상 내 앞에 있다"는 말은 단순히 기억한다는 뜻이 아닙니다. 마치 눈앞에서 자꾸 알짱거린다는 뜻입니다 — 두 사람 사이에 무언가가 끼어들어 서로 얼굴을 가리는 것처럼.
다윗은 누구보다 하나님의 은혜를 알고, 고백했던 사람입니다. 그런데 어느 순간 이 죄가 하나님과 자신 사이에 끼어들어 하나님이 보이지 않게 된 것입니다. 이것이 너무나 괴로웠습니다.
"다윗이 죄를 감추고 싶어 하나님께 나아간 것이 아닙니다. 이 죄 때문에 하나님을 보지 못하는 이 상황이 너무나 괴로웠던 것입니다."
4절에서 "주께만 범죄하였다"는 고백은 다른 사람에게는 죄짓지 않았다는 뜻이 아닙니다. 수학의 벤다이어그램처럼 — 사람에게 지은 죄가 부분집합이라면, 하나님께 지은 죄가 전체집합입니다. 다윗에게 가장 크게 다가온 것은 하나님께 지은 죄였습니다.
적용
죄가 내 시선을 가릴 때, 그 죄를 더 오래 응시하는 것이 아니라 — 그 죄 너머에 있는 하나님을 바라보게 해달라고 고백해야 합니다.
5–6절
"죄악 중에서 출생하였음이여" — 상황의 핑계와 중심의 진실함
5절은 아담으로부터 흘러온 원죄, 즉 우리 핏속에 흐르는 죄의 DNA를 고백하는 구절로 주로 해석됩니다. 다윗은 어린 시절부터 가정에서의 깊은 결핍을 안고 살았습니다 — 아버지가 그를 아들로 여기지 않았고, 수십 년의 별거, 조롱하는 아내. 어쩌면 그 결핍에서 비롯된 순간의 유혹에 넘어간 것이 아니었을까요.
우리에게도 이런 고백이 있습니다. "내 성격이 원래 이래요. 내 상황이 이렇잖아요. 어쩔 수 없었어요." 죄에 대해 상황과 과거를 이유로 붙이고 싶은 유혹이 우리에게도 있습니다.
"그러나 다윗은 거기에 머물지 않습니다."
6절에서 다윗은 고백합니다: "주께서는 중심이 진실함을 원하시오니." 어떤 가정에서 태어났는지, 어떤 상황이라서 죄를 지었는지가 아니라 — 그럼에도 불구하고 중심이 진실한 자에게 하나님은 지혜를 가르치시는 분이십니다.
이 고백으로
상황에 핑계를 대는 것이 아니라, 그 상황에서도 나를 지켜보시는 하나님을 바라보는 중심의 진실함을 내 안에 세워주십시오 — 라고 고백하는 사람이 되기를 원합니다.
7절
"우슬초로 나를 정결하게 하소서" — 죄의 시작까지
우슬초는 유월절에 문설주에 어린 양의 피를 바를 때 쓰인 식물입니다. 그리고 레위기에서는, 나병 환자가 병이 나아 마을로 돌아올 때 제사장 앞에서 드리는 제사에도 쓰였습니다.
나병 환자가 자기 의지로 나병에 걸린 것이 아니듯 — 다윗이 밧세바를 처음 보았을 때 욕심이 일었던 그 순간도, 어쩌면 스스로 어떻게 할 수 없는 지점이었을 수 있습니다. 그래서 다윗은 행동만이 아니라, 그 행동이 일어나는 출발점까지도 하나님께 드리고 있습니다.
"내 행동만 문제가 아니라, 이 행동이 일어나는 그 시작의 순간까지도 하나님이 다스려 달라 — 모든 것을 아뢰고 있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때로 자신의 행동에 너무 자책합니다. "그렇게 말하지 말걸, 그렇게 생각하지 말걸." 하지만 그것은 죄를 하나님과 우리 사이에 두는 방식입니다. 우리가 바라봐야 할 것은, 죄의 시작 그 순간까지도 정결하게 하시는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이 고백으로
죄악의 시작의 틈바구니 속에서도 하나님을 바라보며, 나병 환자를 마을로 들이셨던 것처럼 나를 하나님 나라로 들어가게 해달라 — 고백하며 하나님의 은혜를 구하는 우리가 되기를 원합니다.
죄를 해결하는 방법을 안다고 해서 죄를 안 짓게 되는 것은 아닙니다.
우리는 여전히 크고 작은 죄를 지으며 살아가는 사람들입니다.
다만 우리는 죄를 바라봐야 하는 사람들이 아니라,
하나님의 은혜를 바라봐야 하는 사람들입니다.
시편 51:1 — "주의 인자를 따라 내게 은혜를 베푸시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