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호와를
믿으니
창세기 15장 1–7절2026년 9월 8일
여는 질문
“여호와를 믿으니” 그다음은 무엇입니까
제목에는 정작 중요한 한 마디가 빠져 있습니다. 여호와를 믿으니 어떻게 되었는가. 하나님을 믿는 사람은 결국 어떤 삶을 살아가게 되는가. 말씀을 열기 전에 먼저 각자의 삶에서 나온 대답을 나눴습니다.
성경 인물들에게 똑같이 물어도 대답은 저마다 다를 것입니다. 요셉은 감옥에서도 끝을 알 수 없어도 믿고 살아가는 것이라 할 것이고, 야곱과 이삭은 신앙의 가정 안에 거하는 복이라 할 것이며, 바울은 내 열심과 지식이 아니라 하나님이 내 믿음을 보시더라고 고백할 것입니다.
대답의 선은 저마다 다르게 뻗어 있지만, 결국 하나님이라는 한 점에서 모입니다. 오늘 그 한 점을 아브람의 이야기에서 두 가지로 살펴봅니다.
첫째
여호와를 믿으니 믿음이라는 열매가 열린다
1절은 “이 후에”로 시작합니다. 아브람이 큰일을 겪은 다음이라는 뜻입니다. 재물을 잃을 뻔했고 가족을 잃을 뻔했으며 그것을 되찾기도 했습니다. 가나안으로 가라는 말씀 하나만 붙들고 순종해 걸어온 시간이 있었습니다.
우리도 그렇습니다. 하나님을 뜨겁게 만났던 한순간, 나에게 주신 약속 하나를 붙들고 출발합니다. 그러나 그 뒤로는 고생이란 고생을 다 겪습니다. 그 고생들이 까끌까끌한 모래 입자처럼 처음 세워둔 믿음의 길을 조금씩 깎아내고 풍화시키는 순간을 우리는 겪습니다.
믿음의 기둥이 흔들릴 때 우리는 하나님을 믿어 무엇을 얻어내려는 마음을 발견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분명히 말씀하십니다. 내가 너의 방패일 뿐 아니라 내가 너의 지극히 큰 상급이다. 하나님을 믿는 믿음 자체가 이 믿음의 가장 귀한 열매라는 것입니다.
그러나 상처가 판단을 앞섰습니다
아브람의 대답은 이것이었습니다. 하나님, 저에게 무엇을 주시려고 저의 상급이라 하십니까. 나는 자식이 없습니다. 돈이 있고 인정을 받고 거느린 사람도 많지만, 자식이 없다는 그 한 가지 아픔이 하나님의 말씀을 온전히 받아들이는 데 걸림돌이 되었습니다.
그래서 아브람은 스스로 결론을 내립니다. 내 상속자는 다메섹 사람 엘리에셀입니다. 엘리에셀은 이 가문의 비서실장 같은 사람이었습니다. 아브람과 가장 가깝고, 그를 대신할 자격이 있었으며, 가장 오래 곁에서 보필했습니다. 훗날 이삭의 아내 리브가를 찾으러 보낼 만큼 신뢰받던 인물입니다.
아브람은 이렇게 생각했을 것입니다. 내게 자식이 없으니, 하나님이 이 사람을 아들처럼 여기라 하시는구나. 내가 그동안 하나님을 잘못 생각했구나. 딱 이 정도구나. 자기 판단을 하나님의 뜻이라 착각하는 순간입니다. 우리의 가장 큰 약점이 바로 여기 있습니다.
“아니라”는 말을 들을 수 있는 것도 복입니다
믿음의 조상이라 불리는 아브람조차 하나님께 “아니라”는 말을 듣습니다. 이전에는 이렇게 묵상했습니다. 내가 더 공부하고 더 준비하면 이런 말을 듣지 않고 잘 해낼 수 있겠지. 그런데 아브람도 듣습니다.
우리는 상처와 풍파 때문에 잘못 판단할 수 있습니다. 그때 “아니라”고 말씀해 주시는 하나님이 우리의 상급이십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그를 밖으로 이끌고 나가 하늘의 별을 보여주시며, 처음 주셨던 그 약속을 그대로 다시 말씀하십니다. 네 자손이 이와 같으리라. 하나님의 약속은 변하지 않았습니다. 사람은 아픔 때문에 뜻을 오해할 수 있지만, 하나님은 아니라 하시며 변하지 않은 뜻을 다시 상기시켜 주십니다. 이것이 곧 사람에게 믿음을 요구하시는 하나님의 방식입니다.
그러므로 믿음에는 듣는 태도가 함께 있어야 합니다
듣는 태도 없이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다고 말할 수 없습니다. 우리는 잘못 판단할 수 있는 사람이고, 그때 아니라 하시는 음성을 듣고 따라가야 할 사람이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의 씨 뿌리는 비유도 결론이 같습니다. 좋은 마음 밭에 뿌려진 것은 열매를 맺고, 길가와 돌밭과 가시떨기에 뿌려진 것은 열매를 맺지 못합니다. 말씀이 들어가고 그 말씀을 들을 때 우리 안에 열매가 맺힙니다.
그러니 듣는 통로를 내가 정해 놓아서도 안 됩니다. 이 사람이 말하는 것만 말씀이다, 내가 성경을 직접 보고 감동이 있어야만 말씀이다, 유명한 목사님의 설교가 나에게 와닿아야 말씀이다. 여기서부터 어그러지면 믿음이라는 열매가 맺힐 수 없습니다.
언제나 어디서나 하나님께서 나에게 무엇을 말씀하시는지 엎드려 구하십시오. 아닌 것은 아니고, 맞는 것은 맞고, 나를 향한 약속은 여전히 없어지지 않았다는 그 음성을 삶에서 들으시기 바랍니다.
둘째
그 믿음이 떨어져 또 다른 결실을 맺는다
약속을 다시 듣고 믿었을 때 아브람에게 따라온 것은 바람, 곧 소망이었습니다. 나를 향한 하나님의 말씀이 없어지지 않았구나, 하나님이 여전히 나를 주목하고 계시는구나. 게다가 엘리에셀을 통해서가 아니라 내 몸에서 난 자손을 통해 이루시겠다는 소망이었습니다. 그것도 소망을 가질 수 없는, 바랄 수 없는 자리에서 그렇게 믿었습니다.
- 몸은 죽은 것 같았습니다백 세가 된 자기 몸과 사라의 태를 알고도 믿음이 약해지지 않았습니다.
- 약속을 의심하지 않았습니다믿음으로 견고해져 하나님께 영광을 돌렸습니다.
- 능히 이루실 줄 확신했습니다그러므로 그것이 그에게 의로 여겨졌습니다. (로마서 4장 19–22절)
여기서 익숙한 구조가 보입니다.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으로 의롭다 함을 얻은 것과 똑같습니다. 그래서 바울은 덧붙입니다. 그에게 의로 여겨졌다고 기록된 것은 아브라함만을 위한 것이 아니라, 예수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이를 믿는 우리를 위한 것이라고 말입니다.
“많은 민족”은 혈통이 아닙니다
구약만 놓고 보면 이삭과 야곱, 에서와 에돔 족속, 열두 지파까지 아브라함에게서 여러 민족이 나왔으니 그것으로 해석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바울이 말하는 많은 민족은 이방인까지 포함한, 의롭다 여기심을 받을 모든 사람입니다. 아브라함은 그렇게 모든 믿는 자의 조상이 되었습니다.
우리에게 주신 믿음은 우리 한 사람을 살리기 위해서만 주신 것이 아닙니다. 그 믿음이 열매를 맺어 많은 민족이 의롭다 함을 얻게 하시려고 주신 것입니다.
맺는 말
믿음은 우리 것이 아닙니다
우리가 가진 믿음은 상급이고 열매이며, 곧 많은 결실을 맺습니다. 이 결실은 나 혼자 이 땅에서 잘 먹고 잘 살며 남들보다 조금 더 깨끗하고 경건한 척 살아가라고 주신 것이 아닙니다. 죽을 수밖에 없는 사람들을 살리시려고, 모든 영혼이 구원에 이르기를 원하시는 하나님의 뜻을 이루시려고 선물로 주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믿음은 감정으로 알 수 있는 것도, 생각으로 판단할 수 있는 것도 아닙니다. 내가 확신한다고 해서 그 확신이 믿음의 증거가 되지 않습니다. 나는 분명히 믿음이 있어, 나는 분명히 천국에 갈 거야, 나는 분명히 예수님을 만났어 — 그 말 때문에 의로워지는 것이 아닙니다. 사람의 확신은 보잘것없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약속은 다릅니다. 하늘을 보라, 별을 보라, 이 별들이 네 자손이 되리라. 아브라함에게 주신 그 약속을 통해 우리가 하나님의 별이 되었습니다. 그렇다면 여러분 한 사람을 통해서도 하나님은 수많은 별을 찾아내지 않으시겠습니까.
사서 고생하는 믿음의 삶, 그러나 생명을 소유하고 걸어가는 삶, 많은 열매를 맺는 저와 여러분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이번 주 묵상
- 지금 내 믿음의 기둥을 깎아내고 있는 모래바람은 무엇입니까.
- 내 상처 때문에 하나님의 뜻이라고 서둘러 결론 내린 “엘리에셀”이 내게도 있습니까.
- 하나님이 “아니라” 하실 때, 나는 그 음성을 들을 자리에 엎드려 있습니까.
- 내게 주신 믿음이 누구에게로 흘러가 열매를 맺기를 원하십니까.